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야 카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옆집 아주머니 말에’ 그래서 어쩌라는 거예요. 또 공짜로 일하길 바라나요?” 속으로는 1만 번이나 많이 했던 것 같은 말을 억지로 삼키는 목이 아팠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었어. 법이 없어도 사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남에게 싫은 것, 아쉬운 것을 한 번 말할 수 없고, 내 몸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남이 부탁하는 것은 바로 들어주고 무능력한 사람을 말한다는 것을 아버지 이외의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들의 집에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를 먼저 찾았다. 우리 집 농사만으로도 힘든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부탁에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그들의 일을 먼저 해결해 주셨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슬퍼하며 멈출 수 없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깡마른 몸이 보기 싫다고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에도 아버지는 긴 바지를 입었다. 무논이나 밭에서 일을 할 때에는 바짓가랑이를 벌렁벌렁 올리고 일을 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는 한쪽은 느슨해졌고 다른 한쪽은 물에 젖거나 흙이 묻은 상태로 걷어찬 상태였다.
첫 월급을 받고 반가움과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는 길은 늘 즐겨 입는 청바지와 티셔츠, 운동화 차림이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고 잘 뿐 시간을 보낸 딸은 아빠 안부는 그저 건방지게만 물어봤다. 두 손 가득 어머니 반찬을 들고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간 딸을 뒤쫓았고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급히 달려갔다. 뿌리치는 내 손에 기껏해야 몇 십만원을 쥐어주고 청바지를 입지 말고 예쁜 옷을 사 입으라고 했다. 급히 자전거 핸들을 돌려 돌아가시는 아버지 바지 한쪽 바짓가랑이는 떨어져 한쪽은 내려갔고 마른 땅에 바퀴 자국을 내는 자전거 타이어는 낡고 너덜너덜 소리를 냈다.제대로 된 직장인이 됐지만 지금은 월급도 받고 용돈도 줄 수 있는데, 내 손에 쥐어진 그 돈으로 당신 자전거를 사거나 옷을 사면 목이 아파 눈물에 찬 눈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비쳤다.
전설 속 새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앉은다고 한다. 오동나무는 구렁이과에 속하는 넓은 잎, 큰 키의 나무로 높이 25m 이상 자라며 1년에 한 마디씩 일찍 자라기 때문에 절수를 세어 보면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귀한 딸이 태어나면 마당에 심었다는 오동나무는 목재 중 가장 가볍고 부드러우며 연륜이 뚜렷하고 모양이 아름다우며 나뭇결이 곧고 갈라지거나 꼬임이 없어 예로부터 가구 제조, 귀중품 보관함으로 많이 사용되었다.갓 태어난 딸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심은 오동나무는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들을 편안하게 잠들게 하는 관으로도 만들어졌다. 초롱을 닮은 연보라색 큰 꽃을 봄에 피우는 오동나무 꽃말은 ‘고상’이란다.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는다는데 우리 집에는 왜 그 나무가 없어요?요즘 누가 그걸 심냐, 걱정하지 말라니까. 아버지가 옷장은 조인 것을 해주겠다던 아버지는 사람이 좋다는 허세에 갇혀 평생을 살았다. 결국 그 몸에는 피로만 쌓였고 자각하기도 전에 당신의 몸을 암세포에 모두 주고 말았다. 당신의 결혼식에는 누가 손잡고 들어가느냐고 병상에서 울던 아버지, 지금 계신 그곳에서는 더 이상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지 말고 어머니 아버지, 당신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예식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오동나무 장롱을 시집보내지 않아도 저는 잘 살고 있으니 심심하면 낡은 자전거 뒷좌석에 어머니를 앉히고 마시러 가듯 자전거 페달을 밟고 제 꿈에 덩그러니 놀러 오세요. 이제 꿈에도 안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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