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 만화경처럼 빛나는 청춘의 초상 [2019 ICON] ‘류준열 배우’

30대 초중반 배우 중 요즘 가장 핫한 남성은 류준열(33)이다. 대형 신작마다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렵지 않다. 올해 주연출연작만 3편. 올해 1월 팽방의 교통계 순경 민재로 출연한 그는 두 달 만에 공개된 돈에 증권사 신입 브로커 일현으로 출연했고 하반기에는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운동가 창하를 열연했다.

모두 큰 영화였다. 3편의 총 제작비만 각 130억원(<펜방>), 80억원(<돈>), 190억원(<봉오동 전투>) 선이다. 이야기 수로만 봐도 가장 많지만 올해 그 이상의 다작 배우는 찾아보기 힘들다.40~50대 메인스트림 배우 최민식(57), 송강호(52), 황정민(49), 정우성(46) 박해일(42), 하정우(41) 공유(40) 등도 한두 편밖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나마 송강호가 2편(<기생충><국어력>)으로 뒤를 이었다.

류준열은 만화경처럼 빛나는 배우다. 그것도 영롱해서 보는 각도마다 인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만큼 입체적이고 그만큼 다면적이다. 전형적인 미남상은 아니지만 조각의 미모는 더더욱 그렇지만 그래도 그는 멋지다. 요컨대 그에게는 멋있다는 말보다 멋있다 매력적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과거 박해일을 따라다녔던 수식어처럼 그의 얼굴에는 선과 악의 두 극단이 공존한다. 그 양극 어디선가 펼쳐지는 그의 연기는 쉽게 종잡을 수 없다. 색채를 맞추면 회색인데 이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배역을 맡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감독들이 그를 어떻게 운용하는가를 보면 이 점은 더 명료해진다. 그의 올해 작품의 배역은 스펙트럼을 시험하기 위한 세 장의 리트머스지였다. 예를 들면 <펭번>의 교통순경 민재.은테 안경을 쓴 이 부스스한 청년은 첫 등장부터 다분히 촌스럽다. 갓 올라온 순박함이 도시 같지는 않다. 이것이 모두 그의 가장 연기였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가 교통순경을 자처하게 된 배경과 베일에 싸인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나면서 앞서 가던 편견은 서서히 가라앉는다. 선의 탈을 쓰고 악을 은폐하던 그를 부패사업가 재철(조정석)이 도발한다. 이를 통해 숨겨둔 과거가 폭로되면서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는 그는 고뇌한다.

<동>의 일현도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여의도 증권가 신입 브로커인 그는 이 땅 가난한 청춘의 대변자였다. 돈도 없고 백도 없는 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신나게 한번 살아보는 게 꿈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실적은 꼴찌이고 밤마다 반복되는 술자리로 몸과 마음은 지쳐간다. 영화는 평범한 청년인 그가 선임의 꾐에 빠져 작전세력에 가담하는 것으로 본궤도에 오른다. 이윽고 직장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돈이 계속 일현의 계좌로 입금되면서 그의 일상은 빠르게 화려해진다.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여자와 연애를 하다 보니 부잣집 자식인 후배도 부럽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일상의 겉껍질이 화려해질수록 속은 빨리 썩을 뿐이다. 뒤늦게 제동을 걸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어. 그는 또 괴로워한다.

류준열의 첫 사극 ‘봉오동 전쟁’은 일본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 청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독립군 분대장이 되다. 맑은 눈빛이 매력적인 그는 시종일관 표정을 짓지 않는다. 대사도 최소화된다. 일본군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한 과거의 상처 탓이다. 그래서 안 웃는다 울지도 않아 감정은 사치스러운 거야 한마디로 그는 앞만 보고 질주한다. 달리고 또 달릴 뿐이다. 상체 곳곳에 총탄을 맞고 다리 하나를 잃으면서까지 그는 봉오동 계곡 아래로 적군을 유인한다. 그것만이 마지막 사명인 양.

아쉽게도 세 작품 모두 개봉 당시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유독 류준열이란 배우만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끌어 모은 관객만도 약 1000만 명에 이른다. <봉오동 싸움>이 478만 4352명, <동>이 338만 9125명, <팽방>이 182만 6804명에 이른다. 지난해 <독전>과 <리틀 포레스트>, 2년 전 1000만 영화 <택시운전사>와 <더 킹> <침묵> 등이 있지만 이번처럼 그의 모든 배역이 주인공은 아니었다. 올해야말로 그가 진정한 원 톱으로 비상한 해인 셈이다.

배우 최민식은 언젠가 그에 대해 이렇게 칭찬한 적이 있다. 류준열은 탄성과 릴렉스가 다르다. 유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다, 카메라 앞에서 서로 마주보고 연기할 때 보통은 긴장되고 눈동자가 불안해지지만 준열이는 언제나 연기할 준비가 된 것처럼 편안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언제든지 연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 그만큼 안정감이 느껴진다는 것. 빈말은 아닐 것이다. 그가 밟아온 인생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의 삶 자체에서 훌륭한 연기가 나오는 것을 몸소 가지고 있는 것 같다.첫 번째 꿈은 배우가 아니었다. 사범대에 진학해 평범한 교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수능에 떨어져 재수생을 보낸다. 그리고 곧바로 공부체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원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다. 그 시절 연기 못지않게 많이 한 게 아르바이트였다. 그 자신, 「2015년 상반기까지 해 본 적이 없는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막노동은 기본이었다. 마트의 상하차와 케이터링, 고깃집 서빙과 쌀국수집 서빙, 편의점 아이스크림집 아르바이트, 돌잔치 결혼식 사회, 피자 배달, 아이돌 콘서트 굿즈 판매, 초등학교 연극반 방과후 교사 등. 그리고 소셜 포비아(2015)에 전격 캐스팅되면서 그의 삶은 일약 전환점을 맞는다.

‘소셜포비아’에서 그가 맡은 것은 BJ 양계라는 역이었다. 처음엔 악플을 달기 위해 결성된 노량진현피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들러리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회의 당시 그의 잠재성을 감지한 감독에 의해 주전급인 BJ양계를 제안받고 평생 기회를 잡는다. 실제로 이 영화 개봉 후 참신한 그의 연기를 유심히 본 감독과 작가들에게 연이은 러브콜이 들어왔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그를 스타덤에 올린 tvN 드라마 응답하라1988이다. 선명한 교정 치아를 드러낸 <소셜 포비아> 속 그의 연기는 현실 속의 BJ를 방불케 할 만큼 실감났다. 대사의 80%가 애드리브였다는 후담처럼 충만한 덕기와 자신감으로 한바탕 메서드 연기를 펼쳤던 그다.

이후 류준열은 큰 영화, 작은 영화 할 것 없이 하나하나 나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간다. 방황하는 청춘의 초상을 그린 지건(<글로리데이>(2016), 피살현장 CCTV 영상을 갖고 있는 괴짜 청년(<침묵>(2017), 거칠지만 의로운 부산 깡패 두일(<더 킹>(2017), 회사를 그만두고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청년 재하(<리틀 포레스트>(2018)) 등으로 나뉘어 배역별로 호평을 받았다. 이어 거대 조직의 보스라는 신분을 숨긴 채 형사를 돕는 수수께끼의 사내 록(<독전>(2018)으로 야누스적 이미지를 발산하고 순박한 광주 청년 재식(<택시운전사>(2018)을 호연하며 대중의 가슴을 휘젓는다. 그래, 지금 이 순간에 다가온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배우 류준열이야말로 우리 청춘들을 대표하는 얼굴이자 초상이라고. 기성세대의 얼굴을 표상하고 있는 송강호처럼 이제 그는 우리 사회 청년들의 표정을, 정서를,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재빠른 그의 성공이 시의적절한 운에 따른 것이라고 격하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운이라는 것조차 재능과 실력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찾아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시균 매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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