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에요, “OOO씨, 저 OOO입니다. 제 번호 저장해놨습니까? 어머, 너무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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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저녁 8시를 훌쩍 넘긴 시각, 지난주 H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만난 X아파트 분양상담사다. H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왜 X아파트 분양상담사가 나타났는지 나도 의문이었는데 요즘 그만큼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H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줄을 선 사람들을 상대로 X아파트 분양상담사가 영업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H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는데 X아파트 여자친구가 나를 끌고 와서 잠깐만 X아파트 모델하우스도 보고 가자고 한다. 멀어서 안 간다더니 자기 차 타고 가면 된다고 너무 조르고 그래 가서 요즘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듣자는 심산이었다.
이탈리아에서 ●● 안스플래시
X아파트는 한국 최고의 브랜드다. 그런데 미분양이 됐대. 은평구에 방 2칸짜리 화장실 2개 등 22평짜리 주상복합아파트가 8억. 그것도 지하철에서 500미터 떨어져 있는데? 어쩌면 2020년이나 21년에 분양을 했다면 매진됐을지도 모른다. 타이밍이 안 맞거나 은평구의 입지적 특징이거나.X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고 그녀는 나에게 1000만원을 걸어두라고 말했다. 절대 가계약이 아니라 좋은 호수가 빠지기 전에 먼저 선점해두자는 뜻으로.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통장에 1,000만원도 없었고 인사를 자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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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닷새가 지나서야 그녀가 나에게 다시 전화를 건 것이다. 지난주에만 25개 팔렸거든요~ 천만원만 걸어놓고 일단 좋은 호수 빼고 12월 말에 정부 정책 나오는 걸 보고 임대사업자 제도가 부활하면 계속 가져가라고. 그거 부활하면 대출도 나오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녀가 취했다. 횡설수설하는 게 영락없는 술잔을 건 사람 같았다. 나도 회식 중이라 그녀의 전화를 오래 받지 못했다.밤늦게 나에게 전화한 그녀를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나타난 23, 픽사베이
부동산 투자 관점 2015년 그때도 미분양되는 서울 아파트가 있었다. 그때도 아파트 상담사가 나한테 개인적으로 전화해서 천만원만 빨리 넣어놓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물론 그때 송파에 그 미분양 아파트 6억 주고 샀다면 12억이 됐을 거고, 나는 그 아파트를 팔아 6억 차익을 남기고 회사생활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와 상상만 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그때 아파트를 사지 않았다. 그래서 땅을 쳐서 후회했다.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 그때 일이 똑같이 재방송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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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관점에서 8억원짜리 주상복합아파트 한 채를 팔면 분양상담사에게 얼마가 떨어지니 그녀는 저녁 8시가 훨씬 넘은 시각에 나에게 그렇게 전화를 걸어 불평할 정도였을까. 영업수당과 상관없이 윗팀장이 실적이 하나도 없어서 혼나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일까. 나도 그녀도 돈을 버는 것은 이렇게 어려워. 부디 그녀가 올해 안에 미분양 X아파트 한 채는 잘 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