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아는 것의 시작이다”
-소크라테스-
치지위(知之爲), 치지위(知爲不知), 시지위(時知也), 시지위(時知也)
“아는 것을 안다는 것이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고, 그것이 안다는 것이다.”
-공자 –
<소크라테스 독서법>
책을 읽는 내내 저자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 생각하는 독서
비판적 사고력을 높이는 것이 독서다.무지무지없는무,지아는것없고우아하고우아하고
미지 ‘미’, ‘지’, ‘지’, ‘미’
“하루하루 한자 100일 철” [65] 2022, 02, 18
《오늘의 생각》
논어를 배우던 학창시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에 새기는 지식은 모든 것이 새롭고 미쳐 내가 몰랐던 깨달음에 커다란 망치가 내 속을 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계속 뭔가 배우고, 비우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결국 깨닫지 못하는 것이 더 많아질 거라고. 그때부터 나는 진정으로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고 그동안 배움의 십방에 공력을 부여한 공자의 말씀은 지울 수 없는 내 인생의 명언이 됐다.
학습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되돌아보면 공부는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지식을 얻기까지의 동기 부여가 되는 따뜻한 조언이 필요했던 것 같다. 동기부여라는 것이 어떤 위치와 역할에 중요한 깨달음과 가치를 만들어 주는지를 생각해 보면 조언만큼 따뜻한 위로도 공감도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흔한 속담의 말도 그 뜻을 이해나 존중하기보다 인용해 쓰는 자기 표명에만 간헐적으로 밝히는 어른들의 지식은 무엇일까.
어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숙제다. 어른들의 공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풀어나갈 숙제다. 이 숙제에는 닦아내고 비워야 할 양심과 인격의 무리가 때로 가득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부족함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랑하지 말고 자랑하지 말 것 하지만 SNS에서 인기와 자만은 보여주지 않을까? 보여주는데 집착해 유행을 앞서가고 있거나 높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자신을 비교하며 인용자만 늘고 개성은 묻혀 그 속에서 빛낼 모습만 찾고자 하는 욕망. 그런 욕망이 내게도 있음을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나다움을 찾는다는 가면에서 그 흐름을 타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정말 내가 모르는 걸 안다고 착각하고 믿게.
무지를 아는 것은 진정한 자신다움으로 사는 방법을 찾는 길인지도 모른다. 배움에 즐거운 열망을 갖는 것이 지금의 나답게 매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생각은 여전히 나를 묻고, 진실이란 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거짓말에 몇 퍼센트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는가를 묻는다. 부모로서 자녀에게 공부 강요보다 동화하는 공감대가 우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걱정과 걱정에 요구할 때가 종종 있어도 꾹 참아야 하는 마음이 이 또한 공부일까. 또 공동체에서는 서로 윈윈하는 존중과 배려가 동기부여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것으로 믿지만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함께 노력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니더라도 전체 인원의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동기부여가 되면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아는 것의 시작이라면 배움은 아는 것의 시작에서 미지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