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판정 지옥이 되어버린 임신 후기 [다운천사 꿈별 맞이] 6. 다운증후군

다운천사 금별이를 맞이하여 사연을 연재합니다 힘들었던 시기의 글입니다지금은 온 가족이 금별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합니다.스포일러가 되어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밝힙니다.

양수검사를 한 날은 금요일이었다.원래 몇 주 뒤면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몇 십만원만 더 내면 며칠 안에 주요 유전자 몇 개에 대한 이상 여부만 빨리 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놀라운 자본주의 사회다. 남편은 설명해 주는 간호사에게 웃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왔다. 남편은 하루 종일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전화가 올까 기다렸으나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통화가 이루어졌다.결과는 기형아 피검사 결과에서 보듯이 정밀 초음파 검사에서 보듯이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99.7%라고 했다.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몇 주 뒤 정식 결과가 나왔을 때 외래진료에서 의사에게 0.3% 가능성도 없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러 검사가 같은 결과를 가리킨다고 해서 다운증후군이 아닐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결국 금별이는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됐다.

피검사 때까지만 해도 양수검사를 하지 않겠다는 내 뜻을 지지해 준 남편은 그때는 당연히 다운증후군이 아닌 줄 알고 그랬을 뿐이라며 아이를 보내자고 했다.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큰일이 난 듯 집으로 몰려갔지만 한결같이 울면서 돌아왔다. 이미 아이가 죽은 것처럼 임신을 한 것처럼 당연한 듯. 확실한 판정은 내게도 청천벽력이었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꿈꾸는 사람은 내 뱃속에서 양수검사 결과를 듣기 전과 마찬가지로 발길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아이가 이미 죽은 것처럼 말할 수 없었다.

벌써 23주야. 지금 태어나도 살지도 몰라. 게다가 낙태는 불법인데 나보고 범법자가 되라고? 불법 수술을 한다는 의사에게 내 몸을 맡기라구?”

외치는 나에게 가족은 모두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출산 경험이 없었다면 그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고래를 낳고 주변에서 수많은 출산 경험담을 들어 왔기 때문에 지인들이 출산을 하다 과다 출혈로 중환자실에서 며칠간 생사지경을 헤맨 적도 있어 임신, 출산은 그리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 합법적 진료를 받아도 의료사고가 날 수 있는데 환자로서의 권리도 보장되지 않은 불법수술대에 오르다니 나를 아끼는다는 가족의 말이 맞는지 귀를 의심했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생존이 위협받는다면 임신 중지를 택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편하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닐 것이다. 임신이 그렇듯 임신 중지도 여성의 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초기도 아니고 이미 안정기에 접어들어 유산 위험까지 넘겼는데 겨우 정착한 아이를 억지로 몸에서 떼어놓다니 마음은 차마 버틸 수 있겠는가. 나는 아이보다 내 몸이 먼저 걱정됐다. 아이를 돌려보내라는 말은 내게 칼을 들이대듯 위협적으로 들렸다. 모든 가족이 나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칼 같았다. 나는 아이를 죽이려면 나가라고, 다시는 우리 집에 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지적장애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득하려 했다. 학창시절 지적장애를 가진 동급생을 1년 동안 돌봤던 일화를 이야기하며 그 친구의 어머니는 늘 피곤해 보였다고 말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그런 엄마가 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다고 애원했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하나라도 낳을 테니 계속 아이를 떨어뜨리라고 할 거면 이혼하자고 했다.

잠에 곯아떨어져 있던 임신부였지만 불안으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거동이 불편한 고위험 임산부인 나를 완력으로 불법 수술을 하는 병원에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망상까지 들었다. 불안해서 잘 때 고래 손을 꼭 잡고 잤다. 마치 고래가 나를 지켜주듯 네 살짜리 손에 의지했다.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들이 나와 금별이를 위협하며 가장 안전해야 하는 집에서 불안에 떨었다. 나는 힘든 엄마라서 금별이를 낳기로 한 게 아니다. 안정기에 접어든 나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았고 내가 틀릴까봐 두려웠다. 어린 아이의 온기에 기대어 불안감을 달래줄 정도로 나는 나약했다.

어제까지 유산 위험을 이겨낸 훌륭한 임신부였던 나는 가족의 행복을 깨뜨리는 악녀가 되었고, 어제까지 사랑스럽고 훌륭한 둘째였던 금별이는 가족의 정상성을 위협하는 방해꾼이 되었다. 모두가 기다리던 둘째 아이였는데 다운증후군 아이로 밝혀지는 순간 더 이상 필요 없는 아이가 되어 버리다니, 그런 폭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에 태어날 자격을 누가 감히 정할 수 있겠는가. 여자 아이라 세상에 나올 자격이 없다고 수없이 많은 여성 태아를 살해하던 시절부터 우리는 조금도 나아가지 않았던가. 뱃속의 금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낱 금별일 뿐인데 도대체 기형아 검사가 왜 자식을 대하는 가족의 태도가 돌변하는 것인지 원망스러웠다.

금별이의 장애가 달갑지 않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가족은 호주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경력이 모두 인정되어 영어 점수를 조금 더 올려 지원하는 상태였다. 문제는 영주권 신청 절차의 마지막 단계가 가족 구성원 전원의 신체검사라는 데 있었다. 아프거나 장애가 있다면 영주권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해 봐도 부모가 호주에 살고 있어도 다운증후군 아이가 태어나면 영주권이 나오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오죽하면 우리는 아직 한국에 있는데 영주권이 나오겠느냐는 결론에 이르렀다. 가족의 새 출발마저 좌절되자 남편은 더 강하게 임신 중단을 요구했다. 나도 꿈에 그리던 호주에 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가장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이유로 태아를 희생하면 그곳에서는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 남편은 밤마다 고래를 눕히고 서로 바닥을 드러내고 물어뜯었다. 케케묵은 외로움까지 모조리 끌어올리며 인신공격을 했다. 불과 한 달 전,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사랑하던 부부였지만 지금은 서로가 마지막 악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싸웠다. 아이를 낳는 게 나의 욕심이다 내가 온 가족을 지옥 속의 불로 몰아넣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너는 나와 고래를 버리고 일하러 갔으니 어차피 너 없이 고래를 키웠는데 둘이서도 못 키우겠니?라고 2년간의 해외 근무를 들먹이며 내가 쏘아붙였다. 남편은 이제 자신이 지은 금별이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았다. 그는 그 아이 탓을 하며 가난하고 불행해질지도 모른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내일 고래에게 사고가 나서 장애가 생기면 고래도 버릴 생각이냐고 내가 되물었다.

그렇게 24주가 지나 임신 후기로 접어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고래 앞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할 뿐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내 손을 잡아끌고 불법 낙태 수술을 하는 병원으로 데려갈 만큼 나쁜 놈은 아니었다.금별이는 내 뱃속에 있기 때문에 내가 버티자 가족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는 지키겠다며 떠날 테면 다 떠나라며 큰소리쳤지만 사실은 남편이 정말 나를 우리에게서 떠날까봐 매일 두려웠다. 그러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에게는 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발 나와 아이들을 떠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반대로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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