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매년 계속되는 동창회로 시작한다. 그곳에는 모임을 열고 나오는 동창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을 죽였대 자수할까 말까 생각하다가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었대.
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친구들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자수할 필요조차 없게 상황 정리를 도와라는 사람, 대출도 있고 아이도 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못 돕겠다는 사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신경이 쓰이는 사람. 도움의 적극성만을 근거로 우정의 깊이를 판단할 수 없다. 우정이 없어진 셈이 아니라 다만 우선 순위가 바뀌었을 뿐이므로(p.92). 그러나 오랜 친구는 그 밖에도 다른 것을 고백한다. 나는 여자가 아니라, 너희들 만났을 때부터 남자였다고. 그의 또 하나의 고백도 각각 수용 정도가 다르다. 그저 어려운 고백을 듣고 골똘히 생각한다. 남에게 대할 때 상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의해서 태도가 변하고 이것이 친구를 조바심치것이었다면 애당초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취급이나 태도를 달리할 수밖에 없을까? 성 정체성 장애라는 말이 아무리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고 해도, 원래”장애”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p.124,384)
저자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본래 남녀 구분이라는 것이 모호한 것이라고, 거기에 무리하게 선을 긋으려다 보면 온갖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또 그렇게 일정한 선을 긋으려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p.144).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여성이 특정 방식으로만 묘사된 것을 생각하면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 주장이긴 하다. 그러나 사람의 특성을 연속선상에서 이해시키고 그것을 뫼비우스티에 비유한 것은 인정할 만하다. 게다가 이 작품은 국내 출간된 2022년이 아니라 무려 20년 전인 2001년 일본에 등장했다고 한다. 띠지에 적힌 시대를 초월한 선견지명을 증명하는 대작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 듯했다.
소설 속에는 각자의 절망을 나름대로 ‘현실적인’ 방법으로 풀어가는 이들이 등장했다.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이른바 윤리였다. 그러나 윤리란 거의 근거도 없는 사회통념에 불과하다(p.397)니 조금 서운했다. 마음을 모든 우위에 둘 수는 없다. 세상에는 중요한 것이 많고 중요한 것은 저마다 다르고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은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라서 무섭다는 이유로 멀리하는 것은 위험하다.
짝사랑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출판소 미미디어 출시 2022.09.27.
짝사랑으로 해서 짝사랑 이야기했지만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외로움에 대한 얘기였다. 또는 사랑의 작은 일부 생소한 다른 형태의 사랑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한편 나는 테츠 로우와 리사코의 거북한 부부 관계에 깨달았다. 아내는 “남자의 세계”라는 말을 두려움을 싫어하는 남편이 먼저 고백하기를 끝까지 기다렸다. 남편은 모두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자신의 결점을 감췄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노력은 자신의 위안에 불과했다. 각각의 사정이 서로 사랑에 닿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오해를 적게 하며 서로의 마음을 더 잘 타시면 되는데.700쪽에 달하는 분량이라서, 조금 시간이 걸렸다. 가독성은 있었지만 불필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상황 설명이 상세했다. 나름의 반전이 나오는데 앞에서 에너지를 많이 요구한 별로 안 놀랐어. 인물의 고뇌를 함께 느린 속도로 느끼게 하려는면 성공한 것 같다.주제 의식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물론 이 책이 이제야 나왔다는 점이 아직 멀었다는 반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