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 잇 업을 접한 지 어느덧 15년을 채운다. 익시드2 말기, 그러니까 2005년 후반경 동네 문구점 앞에 있던 엑스트라 미니통을 들여다보고 호기심에 두드리게 되면서 차란을 얼마나 많이 쏟아부었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도 없다. 리더보드가 제공되는 프라임 이후에만 2천코인 정도 소모된 것일까. 그나마 630일의 군생활을 포함해 말이다. 물론 제대 후에는 몸이 많이 녹슬어 예전만큼 자주, 오래 버닝할 수는 없지만.
펌프 잇업을 소재로 한 미디어를 제대로 운영해 보자는 계획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유튜브가 활성화되기 전 개인 사이트가 범람하던 시절 채보 사이트 stageclear.net이라든지 여러 펌프 관련 블로그를 드나들면서 나름대로 펌프에 존재하는 채보 공략이나 다양한 이야기, 그리고 직접 만들어 본 사용자 맞춤형 스텝(UCS)을 풀어놓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스피더의 평균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지금은 어설픈 실력의 필자로서는 범람하는 고수준 채보에 대한 정확한 공략법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들도 펌프를 여러 번 접었다가 다시 태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틈이 많아 UCS는 다행히 하나 얻은 공식 채보(Red Line D22) 덕분에 정규 채보 제작자를 목표로 하고는 있지만 아직 내공을 더 쌓아야 할 단계다. 기본적인 제작 도구를 숙지하는 것조차 미숙하기도 하고. 견딜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수는 있지만 당장은 어느 것 하나 선뜻 메인으로 내세우기 어렵다.
다만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현재 펌프잇업 관련 매체들은 대개 인게임 채보 영상에 집중하거나 마니아층의 수요에 맞춘 바디 카메라나 공략을 제공하는 정도다. 낮은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공략해 나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부분은 기실의 중저 레벨을 즐기는 대다수 사용자와 어느 정도 각 체보에 등장하는 스킬을 섭렵하고 마스터한 스피더 간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당장 준애드8 사용자에 해당하는 필자만 해도 16 이하 채보는 하루에 서너 채 밟아보면 몸이 지루해 견딜 수 없을 정도지만 실제 16개 지위는 중수의 바로미터와 같아 이 레벨대에서 정체기를 겪는 사용자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매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16은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는 레벨대이기 때문에 무수한 채보 중에서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패턴이 무엇이 있는지 정리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10대 초반 혹은 그보다 더 아래로 내려갈 경우 사실상 베이직 모드로 편성돼 있는 체보나 머나먼 15년 전 추억의 체보 외에는 거의 인지도가 없는 것 같다. 더욱이 채보의 길이 정제되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구채보가 곳곳에 뒤섞여 난이도 조정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무리 마니아층의 평균 수준이 상승해도 펌프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일반인 비율이 매우 높다. 분명 이 레벨대를 즐기는 사용자가 상위 레벨을 즐기는 사용자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지만 정작 이들을 위한 콘텐츠는 그리 풍부하지 않다. [현지인 감성]은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필자가 내세운 ‘현지인 감성’의 모토는 일차적으로 베이직 모드의 한계선상(12)에서 풀모드로 넘어가는 사용자가 해당 레벨대 혹은 그보다 약간 낮은 레벨대의 본격적인 스텝이론이 적용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기본기를 다져 적어도 중수 정도의 기량을 갖출 수 있도록 중레벨대의 키를 잡아주는 것이다. 현재 펌프로 중수에 해당하는 Intermediate는 레벨 10부터 19까지를 합하며 20부터 필자가 위치한 23까지가 Advanced, 24 이상은 Expert로 고수 영역에 해당한다. 필자가 모든 채보에 대해 다룰 수 있는 영역은 현 시점에서는 최대 싱글 20, 더블 21까지이며 아래에서는 10을 기준으로 약 1~2레벨 이하까지 고려하고 있다. 현존하는 채보가 3000개를 넘어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고준위와 막대한 물량이 축적된 저준위를 배제해서라도 실질적으로 중준위에서 다뤄야 할 채보는 그 절반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모든 채보를 경험한 것은 아니고 모든 채보를 실수 없이 밟을 만한 기량도 아니기 때문에 고난의 작업이 되겠지만 최선을 다해 따라가려고 한다.
앞으로 쌓아갈 글은 일차적으로는 인게임 화면 캡처와 발카메라를 포함한 플레이 영상을 바탕으로 체보의 특징과 클리어(펌프에서는 Break On;브레그온이라는 표현을 쓰는) 포인트를 지적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다만 레벨을 거쳐 올라갈수록 기존 패턴에 등장하지 않는 스킬이 새롭게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Intermediate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춘 부수적인 설명문이 별첨될 수도 있다. 현재 펌프에서는 칭호 시스템을 통해 걸상(Twist), 단순 폭스(Run), 떨림(Drill), 변속(Gimmick), 하프(Half: 더블 기준 중 4개 또는 6개의 발판에서 등장하는 패턴)의 5가지 유형을 정리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계단(Stair), 복합 및 어긋남(Braket), 롱 작업 등의 심화 스킬이 간혹 존재한다. 이런 노트를 처리하는 방법에도 정석적인 두 다리 번갈아 밟기, 질질 끌기 등 변칙적인 양식이 여럿 있다. 이러한 내용을 사전에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설명문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준을 거듭할수록 스킬 트리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향후 ‘현지인 감성’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게임을 즐기는 것과 잘하는 것의 균형은 얼마나 필요할까. 사람마다 품는 동기나 열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펌프에서는 적어도 어드3~4 수준까지는 실력과 재미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댄스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시작된 펌프가 지금은 사실상 피지컬 스포츠에 가까운 형태로 심화돼 왔기 때문에 일정 시점부터는 각자의 체력과 체격에 따라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 한계점을 최대한 늘리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채보구조와 발판센서 구조, 플레이스타일까지 다방면에서 개발자와 사용자 연구가 속속 이뤄지고 있지만 운동을 즐기지 않고 운동신경 발달과도 거리가 먼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20여 개 안팎까지는 제대로 기본기를 갖춰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물론 거기까지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과 굳이 비교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절대적인 기량 성장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는 것이 좋다. 굳이 남을 의식한다면 적당한 동기부여 차원에서 비슷한 실력대의 경쟁자를 한두 명 염두에 두는 정도일까.
본격적인 ‘현지인 감성’ 프로젝트의 시작은 학기가 끝난 후가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펌프를 시작하는 시점에 꼭 알아야 할 기본사항 및 용어를 정리할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최신 버전인 XX를 기반으로 설명하도록 하지만 XX의 업그레이드 비용이 기존에 비해 높아진 관계로 아직 기존에 보급된 PRIME2를 가동하는 오락실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외에도 이보다 구 버전을 가동하는 오락실도 일부 존재하기 때문에 구 버전의 시스템 및 채보까지 병행 설명할지를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 향후 새 버전이 출시될 경우 난이도 재조정이나 삭제채보, 부분적인 채보 수정 등의 변동사항이 있겠지만 해당 채보만 우선적으로 교환 업로드할지, 다시 처음부터 순회를 시작할지도 아직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려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