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팽이가 운동 중심을 잘못 잡으면 똑바로 돌지 않고 미치광이처럼 돌아가듯이 은하계도 무선자의 삼각대가 없으면 똑바로 궤도를 돌 수 없다. 예를 들어 우주에 지구에 생명체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 탐사를 왔다가 북극지방만 보게 된다면 지구에는 생명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쉽다. 장 씨가 코끼리를 만지듯 하니 지구는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에 불과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행성들을 그렇게 보고 있다. 전체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한쪽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안에는, 벌레 늘어뜨릴 정도의 은하계가 있다. 그 무수한 하천의 세계와 상천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은 채 말로만 떠든다면 무슨 일이든 무허가로 끝나기 마련이다. 은하계와 통하려면 상대를 하나로 통해, 유생무생을 통해, 삼세를 통해, 나아가 행성까지 통해야 모든 것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산책을 나가면 제각기 억회순으로도 통하고 옛 정토를 왕래하며 성성과 함께 운행하며 공존할 수 있다. 또 그래야 손가락 하나 펴서 다른 행성들을 긁어모아올 수 있는 것이다.
1.2. 부처의 팔다리는 아프지 않기 때문에 어느 행성, 어느 은하계 구석구석에서도 평등하게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생명의 차원이나 발전단계, 정신적 능력의 정도를 상세히 알고 따라서 곳곳의 능력에 맞게 발전시킬 수도 있고 지연시킬 수도 있다. 우주가 아무리 크고 행성이, 혹은 뜨겁든 차갑든 모두 생명이 있기에 서로 무심한 왕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을 깨달은 사람>에게 수성, 금성, 화성, 목성 등에 가서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의학적으로 불치판정이 난 병이라도 고칠 수 없는 병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 과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혜의 계시를 줄 수도 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아무 득이 없을 터이니 그런 능력을 함부로 쓰지 않을 뿐이다.
1.3. 생명 한 삶은 저마다 정말 눈물겨운 구석이 있다. 모든 생명이 내 차원이라는 병 속에 갇힌 채 이를 피하려고 나도 모르는 노력을 하다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뿐 아니라 머나먼 우주 너머에서도 이곳과 다름없는 삶이 펼쳐지고 있으니 중생의 눈과 손과 생각이 미치지 않는 세계의 생활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별의 삶은 이곳과 사뭇 달라 아이를 낳는 데도 일일이 수태해 낳지 않고, 마음에 따라 만들기도 하며, 여러 사람이 할 일이 있으면 한마음 한뜻으로 일하고, 할 일이 없으면 하나로 묶어버리기도 한다. 그들의 땅은 마치 보석처럼 빛나 밤낮없이 화려하다. 그에 비하면 <지구>는 마치 여과체와 같아서 마음의 차원에 따라 상천에도 가고 하천에도 가니 그야말로 중세계인 것이다.
1.4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가득하다. 이 지구에만 우글거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행성에도 우글거린다. 생명체에게 동맥정맥을 통해 피가 돌고 오장육부가 완수한 책임을 다하듯 은하계도 지구도 그렇게 빈틈없이 운행하고 있다. 별 안에 별이 있어 질서 정연하게 돌고 있는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안정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1.5. 인간의 재생이나 별의 재생이나 마찬가지다. 가죽의 수명이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주 전체를 금강자석이라고 하면 이 금강자석의 힘에 의해 지구가 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멸망한다. 다른 모든 행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자석 같은 힘은 누가 가지고 있느냐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 마음의 불성의>이다. 바로 우리의 능동적이고 활용적이며 움직일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지닌 이 생명선이다. 그래서 불성이라 이름 붙였다. 우주는 <불성>에 의해서 균형을 잡고 안정되어 있다.
사람들이 여기서 서로 빼앗듯이 행성 간에도 그러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빼앗길 줄 모른다. 배우지 못하면 당해도 호소할 곳도 없으니 능력을 키워야 방어라도 할 것이다. 우리들이 마음공부를 하면 여기서도 살고 거기서도 살고 하나로 열에 헝겊만으로 살 테니 밖에서 무엇이 와도 비로소 나 이외의 것은 없고 모두 자비롭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은하는 크기가 중간 값 정도다. 토솔강 은하는 한국 은하와 같은 것을 2,970개 정도 합친 것일 정도로 방대하다.
1.7. 과학자들은 단순히 지수 수 화 풍이 모여 삼라만상이 일어났다고 할지 몰라도 한 생명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 바람이 불어 물과 먼지가 하나로 합쳐지면 마치 퇴비를 모았을 때 뜨거운 열과 가스가 나오고 쓰레기에서는 벌레가 생기는 것처럼 생명 있는 것이 하나가 돼 능력이 폭발하는 것이다. 이때는 좋다 나쁘다도 없다. 그냥 터졌을 뿐이다.
1.8.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체가 <밝기>를 알고 그것이 반사되어 자신의 분수를 알게 된다. 이것이 <진화>이며 <창조>이다. 이런 일이 불성의만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처럼 지수화 바람이 합쳐져 큰 성주가 되었다는 것은 지수화 바람이 합쳐져 힘이 났다는 것이고 힘이 솟았다는 것은 버무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화를 내니 지수화 바람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지수화 바람이 바탕이 되어 성주를 이룬 것이다. 즉 우주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 생각이 들어 우주를 셋으로 나눴다. 그 가운데 부분이 우리가 통상 우주라는 것이다.
2.0 우리는 우주가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종합해서 <대천세계, 중천세계, 소천세계>로 나뉜다. 예를 들어 계속 설명하겠다. 그 세 우주를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세 아들이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세 아들이다. 이것은 알아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그 세 아들 중 첫째 아들은 7형제를 낳았고, 셋째 아들은 5형제를 낳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들이 낳은 삼형제가 다시 칠형제를 낳았는데, 그 중 삼형제는 생명을 불어넣는 책임을 지고 나머지 사형제는 물질을 만드는 책임을 맡았다. 처음 물질을 만들 때는 경험이 없어 집을 지어도 가늘고 길게 상투 하나 되는 것처럼 삼각형으로 모양만 겨우 만들었다.
2. 그렇게 집을 지어서 생명을 불어넣고, 3칸 집이 5칸 집이 되어서 방대해지므로 길을 닦아야 한다. 도를 닦고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자 수많은 분야가 생기고 다양해지고 수많은 아이들, 즉 수많은 별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성주가 삼형제이고 삼형제가 칠형제이고 칠형제가 수많은 아이이며, 수천 수십만이 되어도 성주의 하나이다. 이렇게수없이만들다보니모든물질이나오고태양이나왔다. 근본에서 근본이 나온 것이다. 이런 은하계·태양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는 태양계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시골 마을 정도다. 그런데 그처럼 은하계가 많고, 태양이 많고 별이 많더라도 바로 이 한 점 생각으로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다면 얼마나 위대한가.
2.2. 중국 사람들은 부처가 될 권리를 갖고 있다. 권리는 있지만 무한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깊숙한 곳에 있는 한 점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금상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에서 본 것밖에 모르고, 그것밖에 상상도 못한다. 다른 세상, 다른 물은 모르기 때문이다. 연못에서 놀고 있던 물고기가 바다를 모르듯이…
2.3. 어떤 행성에서는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 먹고, 입고, 만들고, 없애는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처리된다. 예를 들어 아이를 갖고 싶으면 배로 힘들게 낳지 않아도 아이가 생기고, 없애려면 생각이 한꺼번에 없어진다. 오장육부의 더러운 피 똥 고름 오줌을 뱃속에 넣지 않고도 청정하고 깨끗한 인간의 모습을 남김없이 선신경계의 맛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여남은 모습으로 선신세계에 산다고 해서 부처인 것은 아니다.
2.4. <목성>에서는 지구인들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렇게 처참하게 살지 않는다. 그곳은 밤낮으로 보석이 반사돼 달빛처럼 환하게 밝혀준다. 투명한 밝기에 의해서, 안에서 스스로를 밝힌다. 자신에게 자가 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켠다. 이곳처럼 전기 나갈 걱정이나 전기료 걱정 없이 편리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거기서는 ‘밤, 낮’이라는 단어가 없다. 우리는 왜 그럴 수 없냐면 자신을 믿지 못하고 그 이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치를 안다면 왜 이곳에서만 살 것인가. 여기서 이렇게 공부하면서도 저 동네 가서도 살 수 있다구. 불성이란 어딜 다녀와도 다녀오지 않는다. 그 동네에 가서 살면서도 여기서 다시 산다. 내가 아닌 게 없기 때문이다. 그 수령은 모래알처럼 많다. 하나가 되려면 하나가 되고, 둘이 되려면 둘이 되고, 천이 되려면 천이 되고, 만이 되려면 만이 된다. 이제 하나도 없기 위해서는 없다. 자유자재다 얼마나 좋을까
2.5.3 우주 뒤편에는 <토솔천국>, 즉 엄청난 <범천>이 있다. 범천이란 것은 너무나 광대하다. 우리가 사는 은하는 아주 작은 지방이다. 이런 것을 그냥 알 수는 없다. 내 마음을 두루 깨닫고 성장해서 아주 하얗게 눈을 뜬다
1.0. 팽이가 운동 중심을 잘못 잡으면 똑바로 돌지 않고 미치광이처럼 돌아가듯이 은하계도 무선자의 삼각대가 없으면 똑바로 궤도를 돌 수 없다. 예를 들어 우주에 지구에 생명체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 탐사를 왔다가 북극지방만 보게 된다면 지구에는 생명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쉽다. 장 씨가 코끼리를 만지듯 하니 지구는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에 불과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행성들을 그렇게 보고 있다. 전체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한쪽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안에는, 벌레 늘어뜨릴 정도의 은하계가 있다. 그 무수한 하천의 세계와 상천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은 채 말로만 떠든다면 무슨 일이든 무허가로 끝나기 마련이다. 은하계와 통하려면 상대를 하나로 통해, 유생무생을 통해, 삼세를 통해, 나아가 행성까지 통해야 모든 것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산책을 나가면 제각기 억회순으로도 통하고 옛 정토를 왕래하며 성성과 함께 운행하며 공존할 수 있다. 또 그래야 손가락 하나 펴서 다른 행성들을 긁어모아올 수 있는 것이다.
1.2. 부처의 팔다리는 아프지 않기 때문에 어느 행성, 어느 은하계 구석구석에서도 평등하게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생명의 차원이나 발전단계, 정신적 능력의 정도를 상세히 알고 따라서 곳곳의 능력에 맞게 발전시킬 수도 있고 지연시킬 수도 있다. 우주가 아무리 크고 행성이, 혹은 뜨겁든 차갑든 모두 생명이 있기에 서로 무심한 왕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을 깨달은 사람>에게 수성, 금성, 화성, 목성 등에 가서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의학적으로 불치판정이 난 병이라도 고칠 수 없는 병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 과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혜의 계시를 줄 수도 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아무 득이 없을 터이니 그런 능력을 함부로 쓰지 않을 뿐이다.
1.3. 생명 한 삶은 저마다 정말 눈물겨운 구석이 있다. 모든 생명이 내 차원이라는 병 속에 갇힌 채 이를 피하려고 나도 모르는 노력을 하다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뿐 아니라 머나먼 우주 너머에서도 이곳과 다름없는 삶이 펼쳐지고 있으니 중생의 눈과 손과 생각이 미치지 않는 세계의 생활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별의 삶은 이곳과 사뭇 달라 아이를 낳는 데도 일일이 수태해 낳지 않고, 마음에 따라 만들기도 하며, 여러 사람이 할 일이 있으면 한마음 한뜻으로 일하고, 할 일이 없으면 하나로 묶어버리기도 한다. 그들의 땅은 마치 보석처럼 빛나 밤낮없이 화려하다. 그에 비하면 <지구>는 마치 여과체와 같아서 마음의 차원에 따라 상천에도 가고 하천에도 가니 그야말로 중세계인 것이다.
1.4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가득하다. 이 지구에만 우글거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행성에도 우글거린다. 생명체에게 동맥정맥을 통해 피가 돌고 오장육부가 완수한 책임을 다하듯 은하계도 지구도 그렇게 빈틈없이 운행하고 있다. 별 안에 별이 있어 질서 정연하게 돌고 있는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안정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1.5. 인간의 재생이나 별의 재생이나 마찬가지다. 가죽의 수명이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주 전체를 금강자석이라고 하면 이 금강자석의 힘에 의해 지구가 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멸망한다. 다른 모든 행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자석 같은 힘은 누가 가지고 있느냐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 마음의 불성의>이다. 바로 우리의 능동적이고 활용적이며 움직일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지닌 이 생명선이다. 그래서 불성이라 이름 붙였다. 우주는 <불성>에 의해서 균형을 잡고 안정되어 있다.
사람들이 여기서 서로 빼앗듯이 행성 간에도 그러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빼앗길 줄 모른다. 배우지 못하면 당해도 호소할 곳도 없으니 능력을 키워야 방어라도 할 것이다. 우리들이 마음공부를 하면 여기서도 살고 거기서도 살고 하나로 열에 헝겊만으로 살 테니 밖에서 무엇이 와도 비로소 나 이외의 것은 없고 모두 자비롭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은하는 크기가 중간 값 정도다. 토솔강 은하는 한국 은하와 같은 것을 2,970개 정도 합친 것일 정도로 방대하다.
1.7. 과학자들은 단순히 지수 수 화 풍이 모여 삼라만상이 일어났다고 할지 몰라도 한 생명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 바람이 불어 물과 먼지가 하나로 합쳐지면 마치 퇴비를 모았을 때 뜨거운 열과 가스가 나오고 쓰레기에서는 벌레가 생기는 것처럼 생명 있는 것이 하나가 돼 능력이 폭발하는 것이다. 이때는 좋다 나쁘다도 없다. 그냥 터졌을 뿐이다.
1.8.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체가 <밝기>를 알고 그것이 반사되어 자신의 분수를 알게 된다. 이것이 <진화>이며 <창조>이다. 이런 일이 불성의만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처럼 지수화 바람이 합쳐져 큰 성주가 되었다는 것은 지수화 바람이 합쳐져 힘이 났다는 것이고 힘이 솟았다는 것은 버무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화를 내니 지수화 바람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지수화 바람이 바탕이 되어 성주를 이룬 것이다. 즉 우주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 생각이 들어 우주를 셋으로 나눴다. 그 가운데 부분이 우리가 통상 우주라는 것이다.
2.0 우리는 우주가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종합해서 <대천세계, 중천세계, 소천세계>로 나뉜다. 예를 들어 계속 설명하겠다. 그 세 우주를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세 아들이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세 아들이다. 이것은 알아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그 세 아들 중 첫째 아들은 7형제를 낳았고, 셋째 아들은 5형제를 낳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들이 낳은 삼형제가 다시 칠형제를 낳았는데, 그 중 삼형제는 생명을 불어넣는 책임을 지고 나머지 사형제는 물질을 만드는 책임을 맡았다. 처음 물질을 만들 때는 경험이 없어 집을 지어도 가늘고 길게 상투 하나 되는 것처럼 삼각형으로 모양만 겨우 만들었다.
2. 그렇게 집을 지어서 생명을 불어넣고, 3칸 집이 5칸 집이 되어서 방대해지므로 길을 닦아야 한다. 도를 닦고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자 수많은 분야가 생기고 다양해지고 수많은 아이들, 즉 수많은 별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성주가 삼형제이고 삼형제가 칠형제이고 칠형제가 수많은 아이이며, 수천 수십만이 되어도 성주의 하나이다. 이렇게수없이만들다보니모든물질이나오고태양이나왔다. 근본에서 근본이 나온 것이다. 이런 은하계·태양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는 태양계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시골 마을 정도다. 그런데 그처럼 은하계가 많고, 태양이 많고 별이 많더라도 바로 이 한 점 생각으로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다면 얼마나 위대한가.
2.2. 중국 사람들은 부처가 될 권리를 갖고 있다. 권리는 있지만 무한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깊숙한 곳에 있는 한 점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금상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에서 본 것밖에 모르고, 그것밖에 상상도 못한다. 다른 세상, 다른 물은 모르기 때문이다. 연못에서 놀고 있던 물고기가 바다를 모르듯이…
2.3. 어떤 행성에서는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 먹고, 입고, 만들고, 없애는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처리된다. 예를 들어 아이를 갖고 싶으면 배로 힘들게 낳지 않아도 아이가 생기고, 없애려면 생각이 한꺼번에 없어진다. 오장육부의 더러운 피 똥 고름 오줌을 뱃속에 넣지 않고도 청정하고 깨끗한 인간의 모습을 남김없이 선신경계의 맛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여남은 모습으로 선신세계에 산다고 해서 부처인 것은 아니다.
2.4. <목성>에서는 지구인들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렇게 처참하게 살지 않는다. 그곳은 밤낮으로 보석이 반사돼 달빛처럼 환하게 밝혀준다. 투명한 밝기에 의해서, 안에서 스스로를 밝힌다. 자신에게 자가 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켠다. 이곳처럼 전기 나갈 걱정이나 전기료 걱정 없이 편리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거기서는 ‘밤, 낮’이라는 단어가 없다. 우리는 왜 그럴 수 없냐면 자신을 믿지 못하고 그 이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치를 안다면 왜 이곳에서만 살 것인가. 여기서 이렇게 공부하면서도 저 동네 가서도 살 수 있다구. 불성이란 어딜 다녀와도 다녀오지 않는다. 그 동네에 가서 살면서도 여기서 다시 산다. 내가 아닌 게 없기 때문이다. 그 수령은 모래알처럼 많다. 하나가 되려면 하나가 되고, 둘이 되려면 둘이 되고, 천이 되려면 천이 되고, 만이 되려면 만이 된다. 이제 하나도 없기 위해서는 없다. 자유자재다 얼마나 좋을까
2.5.3 우주 뒤편에는 <토솔천국>, 즉 엄청난 <범천>이 있다. 범천이란 것은 너무나 광대하다. 우리가 사는 은하는 아주 작은 지방이다. 이런 것을 그냥 알 수는 없다. 내 마음을 두루 깨닫고 성장해서 아주 하얗게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