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1월 25일”은비”명명식을 3일 앞둔 토요일 오후 2시. 성남 비행장에서 기념식을 위한 기동 훈련이 잠시 열렸다. 시제 1호기에 탄 전·용식 소령과 백·다소 대위는 시험 비행 훈련을 위해서 고도 1,000피트 상공에서 8문자를 그려하프 큐반 8기동에 들어갔다. 루프를 돌며 비행기가 배면 상태에 빠졌을 때 앞 자리에 있는 정·용식 중령이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비행기에서 사출 했다. 이어 영문도 모른 채 홀로 남은 백·다소 대위가 간신히 탈출하고 항공기는 추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모두가 깜짝 놀란 추락 사고는 다행히 조종사가 무사히 생존하기로 더 큰 비극은 막지만 사업 좌초 위기를 겪게 된다. 사고의 원인은 영국의 마틴·베이커가 납품한 사출 좌석의 문제였다. 사출이 되기 위해서는 사출 핀을 35~40파운드의 힘으로 잡고는 빠져나가도록 설계됐지만 실제로는 7파운드의 힘으로도 빠질 정도로 느슨한 제작된 배면 비행 상태에서 자동 방출된 것이었다. 당시 사고 조사 위원회가 3일 만에 신속하게 원인을 찾아내거나 마틴·베이커의 기술 부사장인 마틴과 그 일행 앞에서 같은 상황을 재현하고 그들의 잘못을 입증시킴으로써 보상 협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당초 새 캐노피 2개를 보상한다는 마틴·베이커와 집요한 협상 끝에 200만달러의 보상비와 두 정비사 교육을 끌어낸 것은 큰 성과다. 사고는 발생했지만 신속한 원인 규명과 입증, 그리고 끈질긴 교섭을 통해서 사출 좌석의 품질 확보는 물론 사업의 영향성을 최소화함으로써 KT-1사업은 다시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출처:항공 우주에 대한 꿈과 도전-항공 우주 산업(주)2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