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고대 그리스의 수학과 천문학

나는 이 장에서 수학을 주로 문제 삼으려 하지만, 그것은 수학 그 자체 때문에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과 관련해 고찰하려는 것이다. 특히 플라톤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그리스인의 탁월성은 다른 어떤 것도 수학과 천문학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예술 문학 철학에서 남긴 업적이란 비판자의 취향에 따라 좋고 나쁨을 비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하학적으로 그들이 이룬 업적은 확고하기 때문에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이들은 그중 아단의 것은 이집트에서 가져왔으며,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바빌로니아에서도 도입한 것도 있다.그러나 이들이 이런 근원에서 얻은 것은 수학적으로 보아 오랫동안 관찰해 온 관찰 기록에 불과했다. 수학적 증명법은, 거의 그리스인이 창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수학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 같지는 않지만 실제 문제들이 수학 연구에 얼마나 자극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다. 처음 가장 단순한 문제는 주로 탈레스와 관련이 있는데 그가 이집트에 갔을 때 왕이 그에게 피라미드의 높이에 대해 물었다. 탈레스는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기 위해 낮에 햇빛 아래서 기다리다가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의 키와 같은 길이가 되었을 때 그 피라미드의 그림자 길이를 쟀다. 물론 그 그림자 길이와 피라미드의 길이는 같은 것이다. 투영법칙 연구는 기하학자 아가타르코스(Agatharcus)가 처음 연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연구하게 된 동기는 아이스큐로스 연극을 공연하기 위한 무대 배경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바다에 떠 있는 배의 거리를 측량하는 문제는 탈레스가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정확하게 해결됐다. 그리스 기하학자를 괴롭힌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한 정육면체의 배를 만드는 문제다. 이 문제는 신전 사제가 처음 문제 삼았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어느 날 신탁을 받았는데 그 신이 지금 그들이 들고 있는 조각상의 두 배 크기나 되는 새 조각상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생각하여 그 조각상의 길이를 2로 하고 하나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보다 8배나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신이 요구한 비용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더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문제를 플라톤으로 가져가서 그의 아카데미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다. 기하학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맡았는데, 수세기 동안 이 문제를 연구하는 동안 그들은 우연히 놀랄 만한 많은 업적을 올린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2의 제곱근을 계산하는 문제이다 2의 제곱근은 처음 발견된 무리수이지만 초기 피타고라스학파에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근사치를 찾아내는데 매우 천재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두 줄의 수열을 짓다. 그 한 줄의 각 항을 a로 표시, 다른 한 줄의 각 항을 b로 표시하고, 각 수열의 제1항은 각각 1부터 시작한다. 각 항의 a는 그 전항의 a와 b의 합에 의해 만들어지며, 각 항의 b는 그 전항의 b에 그 전항의 a를 두 번 합함으로써 만든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제6항까지의 수열은 다음과 같다. (1, 1), (2, 3), (5, 7), (12, 17), (29, 41), (70, 99). 그리고 각 항에서 2a2-b2는 1 또는-1이다. 그리하여 b/a는 거의 2의 제곱근이 된다.*<>그리고 이것은 점점 2의 제곱근에 가까워지게 된다. 예를 들어 99/70의 제곱은 거의 2배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피타고라스는 늘 신비한 인간으로 여겨지지만 프로크로스들은 피타고라스가 기하학적으로 인문교육을 시킨 일인자라고 말한다. 토머스 히스 경을 비롯한 많은 권위자들은 피타고라스가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정리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리스 수학>>정리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면적은 다른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두 정사각형의 면적의 합과 같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정리는 매우 일찍부터 피타고라스 학파에 알려져 있었다. 이들은 또 삼각형 내각의 합은 2직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2의 제곱근 이외의 무리수에 대해서도 연구되었다. 특히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의 사람 테오도로스는 이 문제를 연구했고 플라톤과 대체로 동시대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플라톤보다 약간 선배라고 할 수 있는 테아이토스는 더 일반적으로 연구한다. 데모크리토스도 무리수에 관한 논문을 썼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알 길이 없다. 플라톤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의 작품 ‘테아이테토스’에서 테오도로스와 테아이테토스의 연구 업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의 작품 정치론(Laws)에서 그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것도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고 자신도 이 문제에 관해 알게 된 것이 조금 늦었다고 밝혔다. 물론 이 문제도 피타고라스 학파의 철학과 관련된 문제다.무리수의 발견에서 일어난 가장 주요한 결과 중 하나는 에우독소스(Eudoxus, 기원전 약 408~355년)의 기하학적 비례론의 발견이다. 에우독소스는 이전에는 산술 비례론밖에 없었다. 산술에서 다루는 비례는 이렇다. a의 b에 대한 비와 c의 d에 대한 비가 있는데, 만약 d의 a적이 c의 b적과 같을 때 그 두 개의 비는 같다는 것이다. 즉, ad=bc라면, a:b=c:d라고 하는 것. 이 정리는 산술의 무리수론이 없을 때는 단지 유리수에만 적용될 뿐이다. 그리고 에독스는 이러한 제한을 받지 않는 새로운 비례의 정의를 내렸다. 그것을 보면 오늘날의 해석적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있고 논리적인 의미도 크다. 이 학설은 유클리드(Euclid)에 와서 발전을 보았다.에우독소스는 또 소진법, method of exhaustion을 발견 내지 완성했다. 이는 후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에 의해 매우 성공적으로 이용되었다. 이 방법은 적분을 연상시키는 예를 들면, 엔의 면적 문제를 생각해 보상이 있고, 또 수천, 수만 개의 변을 가진 정다각형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다각형의 면적은 아무리 그 부근이 많아져도 원 지름의 제곱에 비례한다. 또 이 다각형의 변이 많아질수록 그 다각형의 면적은 원의 면적과 그 외접원의 면적의 차이는 어떤 주어진 면적보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면적이라도 그보다 작게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아르키메데스의 공리를 쓰고 있다. 이 공리는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이등분이 있는데, 그 이등분 중 큰 것을 이등분하고, 그 이등분이 된 것을 이등분하여 가면, 드디어 그 최초의 이등분 중 적은 것보다 적은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a가 b보다 클 때 b의 2n곱이 a보다 커지는 정수 n은 존재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소진법이라는 것이 때로는 정확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아르키메데스가 연구한 포물선의 면적을 측정하는 문제 같은 것이다. 또 때로는 원의 면적을 구할 때처럼 다만 계속적으로 근사치에 접근하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엔의 면적을 구하는 문제는 지금에 대한 원 주위의 비를 구하는 문제다. 이 비를 π라고 부른다. 아르키메데스는 π를 계산할 때 근사값 22/7을 사용하였다.이 방법은, 어느 필요한 근사치를 구할 수 있어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어떠한 방법을 이용해도, 결국 근사치에 접근하는 정도의 결과 밖에 초래되지 않는다. π의 근사치를 구하기 위해 원에 내접하는 정다각형과 외접하는 정다각형을 사용하는 방법은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의 안티폰(Antiphon)으로 되돌리게 한다.내가 어렸을 때 소년들의 기하 교과서로 알려진 것은 유클리드뿐이었다. 이 유클리드는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알렉산더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직후였다. 그의 『기하학원론(Elements)』의 대부분이 본래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정리의 순서와 논리적 구조는 대체로 그가 만든 그대로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하를 공부하면 할수록 그의 이 기하학원론은 경탄할 만하다. 그 유명한 평행공리에 의해 평행선을 다룬 방식은 이중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연역에서의 확실성과 또한 연역의 출발점인 가정의 불확실성을 은폐하지 않는다는 장점이다. 에독스의 뒤를 이은 비례론도 바이어슈트라스(Weierstrass)가 19세기 해석론에 도입한 방법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무리수와 관련해 일어나는 여러 난점을 피하고 있다. 그리고 유클리드는 일종의 기하학적 대수에 속한다. 그리고 10권에서는 무리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음으로 그는 입체기하에 들어가는데 정다면체 구조까지 다루고 있다. 이것은 벌써 테아이테토스가 완성하고 있어,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는 이것을 이용하고 있다.그런데 유클리드 『기하학원론』은 분명히 가장 위대한 책 중 하나이며, 그리스인 지성의 가장 완전한 기념비적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그리스인의 한계성은 면치 못했다. 즉, 그 방법이 순수하게 연역적이며, 첫 출발이 되는 가정의 진부를 시험할 방법도 없다. 이러한 가정은 자명하다고 생각되고 있었지만, 19세기가 되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 전체는 부분적으로 다를 가능성이 있으며, 다만 관찰만으로 그것들의 오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유클리드에서도 실용적 이용임을 경시하는 태도를

나는 이 장에서 수학을 주로 문제 삼으려 하지만, 그것은 수학 그 자체 때문에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과 관련해 고찰하려는 것이다. 특히 플라톤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그리스인의 탁월성은 다른 어떤 것도 수학과 천문학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예술 문학 철학에서 남긴 업적이란 비판자의 취향에 따라 좋고 나쁨을 비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하학적으로 그들이 이룬 업적은 확고하기 때문에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이들은 그중 아단의 것은 이집트에서 가져왔으며,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바빌로니아에서도 도입한 것도 있다.그러나 이들이 이런 근원에서 얻은 것은 수학적으로 보아 오랫동안 관찰해 온 관찰 기록에 불과했다. 수학적 증명법은, 거의 그리스인이 창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수학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 같지는 않지만 실제 문제들이 수학 연구에 얼마나 자극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다. 처음 가장 단순한 문제는 주로 탈레스와 관련이 있는데 그가 이집트에 갔을 때 왕이 그에게 피라미드의 높이에 대해 물었다. 탈레스는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기 위해 낮에 햇빛 아래서 기다리다가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의 키와 같은 길이가 되었을 때 그 피라미드의 그림자 길이를 쟀다. 물론 그 그림자 길이와 피라미드의 길이는 같은 것이다. 투영법칙 연구는 기하학자 아가타르코스(Agatharcus)가 처음 연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연구하게 된 동기는 아이스큐로스 연극을 공연하기 위한 무대 배경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바다에 떠 있는 배의 거리를 측량하는 문제는 탈레스가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정확하게 해결됐다. 그리스 기하학자를 괴롭힌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한 정육면체의 배를 만드는 문제다. 이 문제는 신전 사제가 처음 문제 삼았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어느 날 신탁을 받았는데 그 신이 지금 그들이 들고 있는 조각상의 두 배 크기나 되는 새 조각상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생각하여 그 조각상의 길이를 2로 하고 하나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보다 8배나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신이 요구한 비용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더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문제를 플라톤으로 가져가서 그의 아카데미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다. 기하학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맡았는데, 수세기 동안 이 문제를 연구하는 동안 그들은 우연히 놀랄 만한 많은 업적을 올린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2의 제곱근을 계산하는 문제이다 2의 제곱근은 처음 발견된 무리수이지만 초기 피타고라스학파에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근사치를 찾아내는데 매우 천재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두 줄의 수열을 짓다. 그 한 줄의 각 항을 a로 표시, 다른 한 줄의 각 항을 b로 표시하고, 각 수열의 제1항은 각각 1부터 시작한다. 각 항의 a는 그 전항의 a와 b의 합에 의해 만들어지며, 각 항의 b는 그 전항의 b에 그 전항의 a를 두 번 합함으로써 만든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제6항까지의 수열은 다음과 같다. (1, 1), (2, 3), (5, 7), (12, 17), (29, 41), (70, 99). 그리고 각 항에서 2a2-b2는 1 또는-1이다. 그리하여 b/a는 거의 2의 제곱근이 된다.*<>그리고 이것은 점점 2의 제곱근에 가까워지게 된다. 예를 들어 99/70의 제곱은 거의 2배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피타고라스는 늘 신비한 인간으로 여겨지지만 프로크로스들은 피타고라스가 기하학적으로 인문교육을 시킨 일인자라고 말한다. 토머스 히스 경을 비롯한 많은 권위자들은 피타고라스가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정리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리스 수학>>정리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면적은 다른 두 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두 정사각형의 면적의 합과 같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정리는 매우 일찍부터 피타고라스 학파에 알려져 있었다. 이들은 또 삼각형 내각의 합은 2직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2의 제곱근 이외의 무리수에 대해서도 연구되었다. 특히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의 사람 테오도로스는 이 문제를 연구했고 플라톤과 대체로 동시대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플라톤보다 약간 선배라고 할 수 있는 테아이토스는 더 일반적으로 연구한다. 데모크리토스도 무리수에 관한 논문을 썼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알 길이 없다. 플라톤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의 작품 ‘테아이테토스’에서 테오도로스와 테아이테토스의 연구 업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의 작품 정치론(Laws)에서 그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것도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고 자신도 이 문제에 관해 알게 된 것이 조금 늦었다고 밝혔다. 물론 이 문제도 피타고라스 학파의 철학과 관련된 문제다.무리수의 발견에서 일어난 가장 주요한 결과 중 하나는 에우독소스(Eudoxus, 기원전 약 408~355년)의 기하학적 비례론의 발견이다. 에우독소스는 이전에는 산술 비례론밖에 없었다. 산술에서 다루는 비례는 이렇다. a의 b에 대한 비와 c의 d에 대한 비가 있는데, 만약 d의 a적이 c의 b적과 같을 때 그 두 개의 비는 같다는 것이다. 즉, ad=bc라면, a:b=c:d라고 하는 것. 이 정리는 산술의 무리수론이 없을 때는 단지 유리수에만 적용될 뿐이다. 그리고 에독스는 이러한 제한을 받지 않는 새로운 비례의 정의를 내렸다. 그것을 보면 오늘날의 해석적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있고 논리적인 의미도 크다. 이 학설은 유클리드(Euclid)에 와서 발전을 보았다.에우독소스는 또 소진법, method of exhaustion을 발견 내지 완성했다. 이는 후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에 의해 매우 성공적으로 이용되었다. 이 방법은 적분을 연상시키는 예를 들면, 엔의 면적 문제를 생각해 보상이 있고, 또 수천, 수만 개의 변을 가진 정다각형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다각형의 면적은 아무리 그 부근이 많아져도 원 지름의 제곱에 비례한다. 또 이 다각형의 변이 많아질수록 그 다각형의 면적은 원의 면적과 그 외접원의 면적의 차이는 어떤 주어진 면적보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면적이라도 그보다 작게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아르키메데스의 공리를 쓰고 있다. 이 공리는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이등분이 있는데, 그 이등분 중 큰 것을 이등분하고, 그 이등분이 된 것을 이등분하여 가면, 드디어 그 최초의 이등분 중 적은 것보다 적은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a가 b보다 클 때 b의 2n곱이 a보다 커지는 정수 n은 존재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소진법이라는 것이 때로는 정확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아르키메데스가 연구한 포물선의 면적을 측정하는 문제 같은 것이다. 또 때로는 원의 면적을 구할 때처럼 다만 계속적으로 근사치에 접근하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엔의 면적을 구하는 문제는 지금에 대한 원 주위의 비를 구하는 문제다. 이 비를 π라고 부른다. 아르키메데스는 π를 계산할 때 근사값 22/7을 사용하였다.이 방법은, 어느 필요한 근사치를 구할 수 있어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어떠한 방법을 이용해도, 결국 근사치에 접근하는 정도의 결과 밖에 초래되지 않는다. π의 근사치를 구하기 위해 원에 내접하는 정다각형과 외접하는 정다각형을 사용하는 방법은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의 안티폰(Antiphon)으로 되돌리게 한다.내가 어렸을 때 소년들의 기하 교과서로 알려진 것은 유클리드뿐이었다. 이 유클리드는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알렉산더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직후였다. 그의 『기하학원론(Elements)』의 대부분이 본래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정리의 순서와 논리적 구조는 대체로 그가 만든 그대로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하를 공부하면 할수록 그의 이 기하학원론은 경탄할 만하다. 그 유명한 평행공리에 의해 평행선을 다룬 방식은 이중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연역에서의 확실성과 또한 연역의 출발점인 가정의 불확실성을 은폐하지 않는다는 장점이다. 에독스의 뒤를 이은 비례론도 바이어슈트라스(Weierstrass)가 19세기 해석론에 도입한 방법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무리수와 관련해 일어나는 여러 난점을 피하고 있다. 그리고 유클리드는 일종의 기하학적 대수에 속한다. 그리고 10권에서는 무리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음으로 그는 입체기하에 들어가는데 정다면체 구조까지 다루고 있다. 이것은 벌써 테아이테토스가 완성하고 있어,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는 이것을 이용하고 있다.그런데 유클리드 『기하학원론』은 분명히 가장 위대한 책 중 하나이며, 그리스인 지성의 가장 완전한 기념비적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그리스인의 한계성은 면치 못했다. 즉, 그 방법이 순수하게 연역적이며, 첫 출발이 되는 가정의 진부를 시험할 방법도 없다. 이러한 가정은 자명하다고 생각되고 있었지만, 19세기가 되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 전체는 부분적으로 다를 가능성이 있으며, 다만 관찰만으로 그것들의 오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유클리드에서도 실용적 이용임을 경시하는 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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