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이라는 덫에 걸린 라스트 프렌즈-

방송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끔 “아… 현실은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예를 들어 오랫동안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PD조차 중요한 것은 시청률이라고 말할 때 아무리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 빠듯해도 시청률은 좋은데. 그들이 우리를 먹여 살렸다고 칭찬하는 걸 들었을 때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상황에서도 아 그건 시청률이 좋으니까 괜히 공격하는 거야. 배가 아파서요라며 역시 모든 기준점이 시청률을 향하고 있을 때.이런 말을 하는 이른바 방송국 놈들은 스스럼없이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분의 사정은 잘 모르겠으니 다만 듣는 사람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니, 뉴스까지도 길거리 인터뷰? 그것도 예쁜 사람 있으면 주목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 방송국 놈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겠다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시청률이란 표본가구의 시청률 조사기계로부터 산출되는 숫자일 뿐 실제 시청자의 욕구나 취향을 반영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수치 자체에 그다지 큰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청률로 방송국 차지가냐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시청률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시사 예능 드라마 보도국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사실 무엇이든 생계와 관련된 것은 당연히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법이고 사고의 중심이 되는 법인데. 그래도 미미하나마 방송의 공익성이나 사명감이 모든 사고 앞에 한 발짝 앞서 있기를 기대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오로지 그들이 말하는 시청률이 최고라는 입장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방송국 놈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시청률 지상주의를 목격하는 순간은 더더욱.

다들 잘 알겠지만 이런 시청률 지상주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바로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이다. 10편의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대박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게 낫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드라마는, 그리고 때로는 예능 프로그램이 트렌드의 중심이 되고 광고료 벌이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드라마에는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게 방송사의 현실이고. 하지만 투자란 어디까지나 돈벌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뤄지기 때문에 결코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방송사나 공영이나 민영이나 결국 돈벌이를 위해 뛰기 때문에 투자는 한다. 그래도 대신 돈을 벌어야지!”라는 압박은 드라마 제작진에게 당연히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스태프들에겐 ‘좋은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사명감과 함께 ‘돈을 벌어야지!’라는 압박감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더구나 단편도 아니고 장편 드라마라면 그 부담과 부담이 몇 배나 가중될 것이다. 이러니 프로듀서도 작가도 감독도 모두 시청률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 라스트 프렌즈도 원래 시청률 위주로 기획된 드라마다. 우리도 그런 추세인데, 프로듀서가 기획 틀을 만들고, 즉 이런 내용이 팔리면 미리 기획을 한 후 자신의 기획을 확실하게 풀어나갈 작가를 섭외하고, 그 작가와 협의해서 배우를 추가해서 캐릭터를 만들고, 스토리의 틀을 만들어가는. 바꿔 말하면, 일반적으로 작가가 미리 준비하고 쓰기 감독이 연출하는 시스템과는 처음부터 다르다. 당연히 기획부터 배우 캐스팅, 스토리 전개까지 모두 그 기준점은 시청률이다. 팔리는 드라마, 그걸 만들기 위해 이 드라마는 시작됐으니 당연. 한국도 대개 프로듀서나 연출자와 협의하면서 작품을 쓰지만 일본은 이런 조율이 중견 작가에게도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코믹 드라마의 신이라고 불리는 작가 구도 칸쿠로도 프로듀서로부터 초고감수를 받고 그 감수 부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내용을 수정하는 과정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 노출됐을 정도니까. 사실 드라마 온에어를 보고 작가 지망생이나 현장 사람들이 주인공 캐릭터를 보고 웃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제멋대로 작품을 외치는 작가는 정말 있을까 말까 한 상황에서 – 오히려 프로듀서나 감독에게 휘둘리거나 배우들까지 난리를 치면서 대본이 걸레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마치 모든 작가가 극중에서 주인공 캐릭터처럼 독불장군이 되어버린다고 묘사되니까 좀 어이가 없다

라스트 프렌즈를 쓴 작가는 이미 신이여 조금 더 오오쿠 등을 집필한 일본의 중견 작가들이다. 그러나 이 작가도 결국 프로듀서가 기획한 작품을 팔리는 방식으로 써내기로 합의했고 또 그렇게 썼다. 그의 인터뷰에 등장하는 말처럼 이 업계에서는 아무리 작품성이 좋아도 시청률이 나쁘면 그걸로 땡!이라는 인식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바닥을 예로 들면, 드라마 작가로 운 좋게 단편 등으로 데뷔를 했다고 해도 그 후 장편 시리즈가 2편 연속 도산한다든지 하면 그대로 작가로서의 인생은 사멸의 길로 접어든다. 팔리지 않는 작가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작품을 좋아해도. 연출자도 마찬가지여서 야, 쟤 드라마 망했다면서? 이렇게 되면 위축될 수 있다. 죽도록 공부하고 방송국에 들어가 잡일을 다 하는 죽음의 조연출 생활을 거쳐서야 겨우 입봉을 했는데 드라마가 엉망이 돼버리면… 그래, 어디 없는 프리랜서 작가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그 기분은 어떨까? 드라마 만들고 싶어서 드라마국에 들어갔는데, “쟤, 만들기만 하면 망해…” 이런 소리 들으면 속이 썩고 더러워져. 그래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작가나 연출가, 프로듀서는 “팔리는 드라마”를 만드는데 혈안이 된다. 방송사의 기준은 시청률, 시청률이 나쁘면 자기 몫의 자연소멸. 그래서 자극적이고 욕을 먹어도 말이 안 되고 속아도 일단 팔리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일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런 이유들을 바탕으로 라스트 프렌즈는 기획되어 배우들을 모으고 작품을 쓰고 연출을 했다.우선 1화는 대단했다. 이 드라마 팬들이 1회 완성도에 끌렸다고 표현할 만큼 11회 중 1회는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일단 1회의 주목도가 결과물의 절반을 차지하고 들어간다는 드라마판 경험상 1회에 주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스트 프렌즈는 우에노 쥬리, 에이타, 나가사와 마사미, 니시키도 료 등 쟁쟁한 젊은 배우들을 데리고 시작돼 주목을 받았고 그 천하의 우타다 히카루가 주제가를 선보였고 오프닝까지도 환상적이었다. 앞으로의 드라마의 향방을 모두 알 수 있는, 그러나 매우 감각적인 오프닝은 이 드라마가 뭔가 대단한 것을 보여줄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환상과 꿈을 심어주었다. 무엇보다 천연바보 노다메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터프한 루카가 되어 나타난 우에노 쥬리를 보고 충격, 깜찍한 쟈니스 군이 폭력남으로 등장해 충격 콤보, 더 나아가 마지막 장면에선 미치루와 루카가 여자끼리 키스신 작렬했으니 그야말로 전설적인 칸테곤 드라마의 탄생이 아닐까.

여기에 성동일성장애니 가정폭력이니 섹스 공포증이니 하는 대형 드라마가 잇따라 등장하니 당연히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과 변신, 신선한 소재, 아름다운 음악~ 정말 완벽한 드라마가 등장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완성도는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였다. 시청률은 갈수록 높아졌지만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소재는 회를 거듭할수록 강화됐지만 드라마의 완성도나 작품의 구성, 완성도는 터널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작품들의 안드로메다행 원인은 바로 시청률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을 방영하다 보면 제작진 측에서는 어떤 캐릭터가 주목받는지, 어떤 캐릭터를 살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시청자가 좋아하는지 그 과정 속에서 알게 된다. 실제 영화 흥행도 그렇지만 드라마 흥행도 예상했던 것과 예상치 못한 것이 섞여 있어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인기 요인이 등장하면 이를 카드로 사용하려는 욕구가 당연히 생기는 것이다.

원래 라스트 프렌즈의 중심은 드라마 시작부터 보이는 것처럼 당연히 맞고 사는 미치루다. 미치루가 폭력남의 굴레에서 벗어나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고 자립해 나가는 것이 이 이야기의 중심이며, 청순파의 인기스타 나가사와 마사미를 띄우기에도 적합한 내용으로, 이렇게 미치루를 중심으로 주위 친구의 고민을 하나 둘 사이에 두고 끝까지 달려가면 좋았다. 그런 드라마였다. 첫 번째 기획도 그랬고.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어? 사람들은 성동일성 장애를 겪고 있는 루카를 좋아한단다. 옆에서 잘 돌봐주는 타케루도 좋단다. 그래도 매일 험상궂은 얼굴로 추위를 많이 타(마사미 특유의 움츠림 모션) 미안네 루카만 반복하는 민폐 캐릭터의 절정 미치루는 당대 비호감이라고 한다. 그래서 작가와 프로듀서는 본래 줄을 두고 인물의 비중을 조정한다. 루카, 타케루를 늘리고 미치루는 버릴 수 없어 그래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지만 사실은 고뇌의 핵심은 루카 쪽에 더 실리게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애초부터 얘기하고 싶었던 고민이 하나둘씩 비중상의 문제로 줄어들게 된다. 타케루의 섹스 공포증과 그 원인, 엘리의 고독, 소스케의 어린 시절 받은 상처 등등. 이 모든 것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루카, 타케루, 미치루 세 캐릭터가 남아 있지만 정작 이 드라마가 이거 보여드릴게요!라는 젊은이들의 고민은 바람처럼 사라진 것이다.

난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나올 예정이었던 줄 몰라. 작가도 프로듀서도 어느 정도 캐릭터 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의도와 틀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갑자기 좋은 카드 루카 & 타케루와 좋은 시청률이라는 돌발 변수가 생겼고 이 변수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작가와 프로듀서가 상반되면서 자연스럽게 얘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있어야 할 이야기는 사라지고, 매력적이어야 할 주인공은 매력을 잃고(뭐, 이것은 나가사와 마사미의 연기력.

근데… 이 드라마의 미덕이 아예 없는 걸까? 정말 비윤리적이냐고 묻자 나는 이 둘은 일단 빼고 얘기하자고 답하고 싶다. 물론 비윤리적이지만 침몰 직전의 난파선을 온몸으로 막아낸 아이들이 2명 있다고. 우에노 쥬리와 에이다.이 두 배우는 86년생, 82년생으로 일명 동급 최강으로 불리는 연기력을 갖고 있다. 자신의 캐릭터에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로 정평이 난 우에노 쥬리는 이번에도 ‘루카’에 빙의해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는데, 우에노 쥬리의 작품을 꽤 자주 보아온 나로서는 늘 자신을 내던지고 연기하는 이 배우는 놀라울 정도다. 흔히 노다메 칸타빌레와 라스트 프렌즈 사이의 차이를 말하곤 하는데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스윙걸즈 등을 떠올려도 우에노 주리의 변신은 언제나 놀라운 수준. 잔잔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자기주장이 강하고 대본해석력도 특이하며 건방지다 고집불통 등 찌라시 공격에 번번이 시달리는 배우지만, 그래도 우에노 주리가 항상 새 작품에 캐스팅되고 또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데는 이런 그의 끈기와 오기가 작품에 잘 반영돼 있고, 이에 대한 스태프의 신뢰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한편, 에이타는 [친구 전문 배우], [주연 옆의 중요 조연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많은 작품에서 항상 2인자 자리에 서 있던 배우이다. 매력은 있지만 확 튀는 한방이 없었던 친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라스트 프렌즈에서 친절남 또는 보살타케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데 성공했다. 게이로 오해받을 만큼 중성적인 매력에 주변 친구들과 커피를 끓이느라 늘 바빴던 타케루지만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다정함과 아량으로 새로운 개념의 남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상냥한 캐릭터는 실제 에이타라는 배우의 성격과도 맞물려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착하고 겸손하다고 칭찬해 작가가 이 면을 타케루 역에 많이 넣은 것 같다.

그리고 우타다 히카루의 명곡 “Prisoner of Love”는 주제가로서 정말 기록에 남을 만하다. 다른 건 몰라도 오프닝 하나는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라스트 프렌즈로 이 곡이 없었다면 그토록 주목을 받았을까. 우타다의 새 앨범이 나왔을 때 제일 먼저 ‘이거 나온다!’ 하고 넣은 곡인데 이렇게 타이업해서 히트 한 방 날려주시고… 진짜 히키는 천재. (물론 돈벌이도 천재) 아, 그리고 연기는 그저 그랬지만 ‘변신할 수 있어’라는 작가와 프로듀서의 말에 이끌려 폭력남으로 변신한 니시키도 료군에게도 진심어린 위로와 약간의 위안을 주었다. 쟈니스로서는 정말 용감한 결단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길고 긴 비윤리적 여행을 거친 라스트 프렌즈. 마침내 어제 11회까지 모든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좋은 게 좋은 거야. 지금까지 본 것+새로운 비윤리적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물로 주겠다는 결론까지 더해져 정말 거품을 물고 싶었는데 시청률이라는 것은 거대한 탑과 타협하면 꼬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에노 쥬리와 에이타라는 두 배우를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마음을 다잡고 시원시원하게 결정하기로 했다.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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