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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 큰아들 고니 사진

현미의 둘째 아들 이영준의 오른쪽 아버지를 닮아서 심장이 안 좋대요.

현미의 아들, 건희의 나이, 직업, 학력, 가족, 자녀, 건희(본명 이용곤1962년 1월 11일~)는 대한민국의 가수, 방송인, 부동산 컨설턴트, 본명이 영곤 출생, 1962년 1월 11일(58세), 대한민국의 전 서울특별시 직업가수 뮤지컬배우방송 부동산컨설턴트기업 가장 루트 활동시기, 1983년~현재 배우자인 고민숙(이영숙) 어머니(이영숙(1959년~1959년), 아버지(이영숙(이영숙)가, 아버지(1959년~1959년~1959년~1959년)와 지웅숙(1959년~)

현미의 차남 이영준의 처며느리 가수 원준희 원준희 본명 안도희 출생 1967년 1월 19일(만 53세), 대한민국 국기 서울특별시 학력계원예술고등학교(졸업), 가족의 시부모(현미 이봉조) 배우자, 이영준 슬하 1남 2녀(이민지, 이영준),

이봉조내학력고향본관 장수 이씨 #출생 1931년 5월 1일 고향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작고 1987년 8월 31일 서울특별시 가족 최초의 부인 노정숙, 현제 슬하 3남 3녀 학력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종교 개신교

이봉조는 노 전숙과 열애 끝에 결혼해 1남 3녀를 두게 된다. 그러나 그 사이 본부의 은밀히 가수 현미를 만나 동거하게 된다. 이후 현미가 두 아들을 낳을 때까지 본부인 노정숙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미의 장남과 노정숙의 셋째 아들이 동갑이라는 사실이다. 이후 외도가 들통나 가정파탄에 이를 지경이었다. 실제로 1960년대에는 비교적 자주 일어난 일이다. 그 당시 이혼 사유 1위(그것도 매우 압도적이었다)가 부정행위 또는 2집 가사였던 것을 보면… 또 당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 적령기의 남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남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여자들은 후처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본부원이 있다는 사실을 안 현미 측의 요구로 사실혼 관계가 15년 만에 끝났다.

이봉조 본부장인 노전숙 사이에서 태어난 4남매는 모두 훌륭하게 성장했다. 모두 명문대를 졸업했고 외모도 뛰어났다. 아들 이용대는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재학 중인 22세에 사법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역임한 뒤 하버드대 로스쿨 유학을 거쳐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도 취득. 현재는 서초동 소재 법무법인 수호의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광고도 찍을 정도로 잘생겼다. 이화여대 출신 엘리트인 노정숙처럼 딸들도 명문 이화여대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의사 교수 대기업 임원들과 결혼했다.

현미나이키 학력 고향 김명선 출생 1937년 1월 28일(만 83세) 고향 평안남도 강동군 고천면 맥전리학력 덕성여자대학교(가정학과/명예학사) 혈액형 O형 [4] 가족 배우자 이봉조 슬하 2남 조카 사정, 한상진 종교 개신교 데뷔 1957년 미8군 번안곡 ODBannd곡

현미는 8형제 중 세 번째로 14후퇴 때 부모와 6형제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당시 평양의 집이 무너지면서 조부모님 댁에 여동생 2명이 맡겨져 14후퇴 당시 피난길에 오르지 못하고 북한에 남았다. 해방 직후 두 여동생은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을 때 친형과 동행해 중국 연안에서 한 차례 만났는데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현미는 1962년 이봉조와 1집을 만들면서 미국의 대가 냇 킹콜의 곡에 현미 본인이 직접 작사한 가사를 붙여 밤안개를 발표하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다. 사실 원래 밤안개가 타이틀곡은 아니었지만 밤안개가 타이틀곡이었던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보다 인기가 높아지자 뒤늦게 교체해 재발매했다. 후속곡으로 무작정해서 다행이에요로 활동해 62년 새해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후 1960년대 대표적인 여가수로 자리매김하며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한명숙과 한동안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현미는 가족관계상 노사봉 노사영의 이모이자 배우 한상진도 그의 조카다. 1980년대 후반 사랑은 유리와 같은 것으로 유명한 인기가수였던 원준희는 현미의 둘째 아들. 어르신도 이런 어르신이 없다.

게다가 현미는 나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연예인으로서도 최불암보다 선배다. 한국 가요계의 레전드 패티 김보다 누나이자 선배다. 패티 김을 혜자(패티 김의 본명)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가수가 현미라고 한다. 그녀가 21세기에 이르러서야 연예계에서 언니라고 부른 것은 엄오란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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